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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읽은 데미안 - 아브락사스와 알을 깨고 나오는 새

서른에 읽은 데미안 - 아브락사스와 알을 깨고 나오는 새

데미안을 읽으면서 느낀 내용

데미안 표지

데미안은 10년 마다 읽어야하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어릴적 필독 도서로 선정되어 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내용에대한 기억은 잘 나지 않았던 책입니다. 오늘 대구에 방문하여 지인이 운영하는 공유 서재(일상환기)에 방문하였는데 선반위에 올려져 있는 데미안을 보고 다시 한 번 읽게 되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펼치며,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 깊이 파고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두 세계’ 챕터를 읽으며, 오랫동안 저를 옭아매고 있던 어떤 깨달음의 조각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독후감(?) 시작에 앞서, 대구에서 조용한 사색의 공간을 찾는 분은 경상 감영 공원에 위치한 ‘일상환기’ 추천드립니다.

절대 지인 가게라서 홍보 한 번 해보는겁니다. 오해 없길 바랍니다.

대구 일상환기

일상환기

분위기 좋고 조용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장소입니다. 살짝 홍보겸 공유드립니다!


타인의 잣대인가, 내면의 기준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옳다/그르다’ 혹은 ‘좋다/싫다’의 이분법적인 틀에 갇히곤 합니다. 하지만 문득, 이러한 잣대가 과연 순수하게 ‘나’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 사회적인 통념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도록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요?

데미안은 이러한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찰하도록 이끄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싱클레어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역시 끊임없이 외부의 영향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강렬하게 다가왔던 주제는 바로 대척점에 있는 것들의 공존이었습니다. 선과 악, 운명과 자유의지처럼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이 때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통찰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아브락사스’였죠. 획일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했습니다.

알을 깨자

싱클레어가 낡은 껍데기를 깨고 새로운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이미지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로는 세상이 정해놓은 규범을 벗어나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찾아 용감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기존에 ‘나쁘다’고 여겼던 것 안에도 성장의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저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이러한 데미안의 메시지는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향후 커리어에 대한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일반적인 기준인 연봉이나 안정성을 따라 회사를 선택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깊은 회의감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세상이 제시하는 ‘좋은 직업’이라는 틀에 갇혀, 정작 제 내면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라도 데미안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내면의 성찰을 통해 진정으로 제가 원하는 모습, 제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찾아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줄 평

데미안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용기를 주는 철학적인 여정으로 초대하는 책입니다.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도록 격려하는 그의 메시지는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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